詩다움

거미줄에 걸린 빗방울들 [조용미]

초록여신 2008. 11. 15. 21:09

 

 

 

 

 

 

 

 

 

 

폭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서

베란다 창의 방충망에,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크고 작은 빗방울들이 잔뜩 걸려들었다

 

 

빗방울들은 저 망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파닥일 날개조차 없이

손으로 한번 탁 털어주면 되겠지만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을

거미줄에 걸린 것들이 바람이나 노을의 분홍빛이라 해도

그것이 온전히 거미의 것이듯,

 

 

쭉쭉 물기를 빨아들여라

네 몸이 부어오를 때까지

 

 

투명한 저것의 뼈를 다 빨아 먹어라

네 몸이 변할 것이다

 

 

빗방울들이 촘촘한 정자살의 방충망으로

침입한다

자기 몸을 뭉그러뜨리며 스며든다

 

 

몸에 녹물이 들어가는 방충망,

방충망의 촘촘한 살이

녹아들어간다

 

 

누가 거미줄을 빨아 먹고 있다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문학과지성사(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