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생태 보고서 3 [허연]

초록여신 2008. 11. 15. 19:43

 

 

 

 

 

 

 

 

 

 허접할수록 아름답다. 고대의 동굴 속에서 등잔의 그을음을 발견할 때. 아, 누군가 살려고 했었구나. 포기하지 않았었구나. 저잣거리를 도망친 누군가가 여기서 욕망을 접었구나. 외롭게.

 

 

 흔적은 그렇게 오래간다. 동굴을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자기 발로 동굴에 들어온 사람들을. 음습함에 길들기 전 골백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했을 사람들을. 살기 위해 어둠에 길든 사람들을.

 

 

 동굴을 나가지 못한 것들은 뼈가 됐다. 흩어진 자모처럼 널브러진 뼈들을 보며 내가 속한 종(種)의 기억을 더듬는다.

 

 

 빛을 바라보면 왜 어지러운지 알 것 같았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