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여, 라는 말 [나희덕]

초록여신 2008. 11. 9. 13:15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락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할 수 없어 여, 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물에 영영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바위,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