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시집 속에 꽂혀 있는 지하철 패스 한 장 [박진성]

초록여신 2008. 11. 6. 00:33

 

 

 

 

 

 

 

 

 

 

 

 지하철 패스가 튀어나온다 오래된 시집을 열었을 뿐인데 온몸 누렇게 탈색된 기억이 방바닥에 우표처럼 달라붙는다 너는, 칠 년 전에 낙성대역 4번 출구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인데 들어가서 뜨거워지고 싶었을 것인데, 애인과 다투고 돌아오던 제기역, 가을밤 은행나무 숲깊에서 시집 속으로 빨려들어왔구나 너는, 시집 속 몇 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고 네 몸에 묻은 리듬으로 침엽수였다가 활엽수였다가 네 집 속 나무들을 온통 흔들었을 것이고 무수히 바뀌었던 이웃의 집들 무성한 소문 속에서 조금씩 낡아갔을 것이고 그래서 너는 출발역과 도착역이 없는 거구나 네가 바닥에 달라붙자 내 방은 어디론가 배달될 것만 같다 오래되어서 귀퉁이가 둥글둥글해진 편지 봉투처럼

 

 

 

 

 

* 아라리, 랜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