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물의 말 [이병률]

초록여신 2008. 10. 31. 06:43

 

 

 

 

 

 

 

 

 

새벽 네시나 됐을까

이마 한가운데로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잠에서 깬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 탓에

기와도 빗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겠나보다

자리를 옮기고 냄비를 가져다놓으니

똑 똑

 

 

잠들 만하면 떨어지고

잠들 만하면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는 소리를 낸다

소리를 줄이려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담그자

냄비 가득 증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나고

거꾸로 누워 천장에 눈을 맞추니

꼭 내 얼굴을 닮은 얼룩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시린 이마

안 풀리는 일들이 꿈으로 닥쳐온다 했는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느라 늦게 일어나

늦은 약속에 나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시린 이마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로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

 

 

 

 

* 바람의 사생활,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