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시월 [류인서]

초록여신 2008. 10. 31. 06:28

 

 

 

 

 

 

 

 

 

 

늑골 가운데에다 나 활 하나 숨겨두고 있네

심장에서 파낸 석촉의 화살

팽팽한 시위에 메워 이제 당기려 하네

 

 

하늘은 오래 명치끝에 매달려

이슬보다 더 고요하네

나의 과녁은

별이나 꽃처럼 눈부신 것이 아니네

빛살만 골라 밟던 바람이나

그늘 비껴가는 어둠 또한 겨누지 않겠네

 

 

통증은 먼저 명치를 차고 나가

여문 하늘부터 날카로이 깨트릴 것이네

서둘어야겠네, 이미
열매처럼 무거워져 졸고 있는 저 길들을

앞질러야 하네

시간의 완강한 눈꺼풀 찢어 젖히고

나 끝내 선명한 피의 점안식 치르려 하네

 

 

목숨 떨리는 이 반역의 여진

감각의 활줄 위에서 깊이 눈부시리

 

 

 

 

*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창비(2005)

 

 

 

.......

서둘 필요조차 없이, 10월의 마지막 날에 당도했군요.

가을비는 눈물을 아침부터 마구마구 쏟아내고,

단풍잎과 은행잎들의 멋드러진 수다도 곧 뚝, 뚝, 뚝,

이 생을 마감하겠지요.

그들의 삶 위에서 우리네들 또한 한 살 무거워진 나이를 포개어 놓겠지요.

2008년 10월의 마지막 날.

마음 속에 드리워진 걱정과 서운함, 미움의 앙금도 한 겹 한 겹 걷어내시고, 그리하여 방긋 미소지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2008.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