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영혼에 대하여 [이기철]
초록여신
2008. 10. 24. 18:07
그는 몸에 깃들어 싹 나고 꽃 핀다
포옹할 때 몸의 기쁨을 도왔고
여자의 피부에 닿을 때 도취하는 몸을 달래기도 했다
그는 때로 몸을 떠났다가도
예고 없이 몸으로 돌아온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나그네처럼
마침내 몸이 죽고 영혼이 떠났다가도
영혼은 그가 살던 집인 몸을
우편배달부가 주소를 찾듯 다시 찾아온다
그의 옛 집인 몸이 흙 속에서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그가 옛날에 만들어놓은 상처가
진흙 속에서 얼마나 사라졌는지를 궁금해 하며
그는 그가 잘 기억하고 있는 몸의 길로 걸어온다
그가 먼 곳을 떠돌다가 예고 없이 돌아와도
몸이 성내지 않고 그를 받아주던 것처럼
그가 아플 때 몸이 수저를 들고
그의 입에 쑥물을 넣어주던 것처럼
영혼은 젖은 신발을 털며
몸속으로 돌아온다
그의 허술한 숙소였던 몸으로
*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서정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