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꿈의 모서리가 뭉툭해지는 날은 올까 [정영선]

초록여신 2008. 10. 12. 08:45

 

 

 

 

 

 

 

 

 

 

강진 옛 가마터를 빠져나온 도자기 파편 하나
깨어졌음에도 아직 이름을 달고 있다
'청자상감운학무늬병편'
흙 속에 파묻힐 때 이름도 묻혀
넓은 그늘의 나뭇잎을 틔울 생각에 겨웠을 그
다시 햇빛 속으로 끌려나와
조각난 구름을 타고 날개가 잘린 새가 절름거리는
부서진 몸에 다시 담은 완전에의 꿈
처음 도공은 꿈을 살았으나
나중 꿈이 도공을 살았으리
어떤 천형을 받은 것들은 제 꿈 아니면
남의 것을 덤벙 덮어쓰고 평생 앓는 것을 알겠다
절름거리는 저 새가 실어 나르는
꿈꾸는 자는 죽어도 대대로 살아남는 꿈
올라타고 갈 자를 찾고 있다
고삐를 조일 자를 찾고 있다
꿈에 시달려본 자만이 아는 통증으로
파편의 모서리가 내 가슴을 찌른다
찔리면서도 한 발짝을 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내 꿈의 오리무중을
유리 진열장 속에서 울음을 반짝이는 저 파편이 꿰뚫는다


서 있는 것들이 모두 꿈의 무게로 휘청거린다

 

 

 

 

*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