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순환 열차에서 [정영선]

초록여신 2008. 10. 12. 08:41

 

 

 

 

 

 

 

 

 

 

호박잎들이 온 지붕을 덮었었네

스스로의 꿈에 맘취해 아버지가 떠난 후

우리집 넝쿨에 호박은 열리지 않고

가난만 넌출넌출 뻗어나갔었네

마당가의 허기진 나무 한 그루

이제 넓어진 품으로 자라 있을까

잎잎들이 그 품을 들락거리는 것 그리어볼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아무 데나 뻗어서 마음을 얽고 있던

내 안의 줄기들을 걷어내네

만지면 먼지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그 아래

늙은 호박 한 덩이 실하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환하네

 

 

건널목에서

주먹을 꽉 쥐고 달려온 길들이 스르르 주먹을 펴고

제 갈 길로 사방 가네

 

 

 

 

*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