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마지막 연인 [김태동]
슬픔이 다하는 날 나는 길모퉁이에서 내 영혼의 마지막 연인을 떠나보내며
아름답게 죽어가리라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고 담벼락
굵은 글씨로 써내려가리라 빗물이 하염없이 내 마지막 숨결의 영상을 흘러갈지라도
나 그 빗물이 되어 사랑했었다고 소리치리라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사람도
오랜 침묵 뒤 저 금빛 저무는 산 한 그루 나무가 되리니
누구보다 먼저 아름다운 시절 사랑했었다고 목이 메는 갈매기도 세월은 늘
물결 부서지는 암초더미에 걸려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푸르게 푸르게 울고 있듯이
슬픔이 다하는 날 나 돌아보지 않으며
나,
이 아름다운 시절 사랑하며 이곳을 떠난다고 길모퉁이
지워지는 내 영혼의 마지막 연인이여
연인이여 빗물이 하염없이 내 마지막 숨결의 영상을 흘러간다
이런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고 이런 아름다운 시절이
ㅡ 김태동, 『청춘』(문학과지성 시인선 224)
* 쨍한 사랑 노래 / 박혜경.이광호 엮음, 문학과지성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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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없다. 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저 난폭한 시간 앞에서 막막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다만 구체적인 것은 현존하는 두 사람의 육체일 뿐.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존재의 결합이라는 연애시의 욕망은, 사실은 그 어긋남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을 전제한다. 그러니 모든 연애시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써 연애의 주체는 사랑이라는 상처 속에서 실존적 동일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랑을 방해하는 제도적 현실에 대한 경멸조차도, 그 사랑의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은폐하는 알리바이일지도 모른다. 상처의 뼈아픈 깊이를 통해서, 연애에 처한 자는 주체성을 얻는다. 소통의 지속성이 아니라 부재의 지속성이, 사랑의 벗어날 수 없는 중독성을 보장한다. 그러니까 그 모든 부재와 상실과 환명이 역설적으로 사랑을 증거한다.
ㅡ이광호의 해설, 「연애시를 읽는 몇 가지 이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