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지상의 방 한 칸 [최금진]
초록여신
2008. 10. 7. 21:39
다이얼을 돌리다 말고 땡그랑,
백원짜리 동전처럼 떨어지는 사람들 이름을
그는 잃어버린다
시간도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자정
길 위의 모든 전화부스엔 손님이 끊겼을 것이나
머리통에 환하게 불 켜진 채
갈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칸칸이 유리문 닫고 담배를 피운다
하늘 꼭대기에서 보면 어둠속 전화부스는
이름 없는 사내들의 별자리
담뱃불처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얼굴을
마침내 제 품속에 문질러 꺼버리고는
그는 쭈그리고 앉는다
수화기에 대고 텅 빈 노래를 불러본다
이따금 술취한 이들과 눈 마주치지만
교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밤이면
길은 저절로 끊어진다
나 여기 다녀간다, 여기서 하룻밤 살았다, 중얼거리며
그는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는다
수화기를 꼭 붙들고 그는 혼자 통화중이다
아무도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다
어둠이 끌고 올라가는 지상의 방 한칸 속에
그가 환하게 불 켜져 있다
* 새들의 역사, 창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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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고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01년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