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다시 오동꽃 [장석남]

초록여신 2008. 10. 5. 11:31

 

 

 

 

 

 

 

 

 

 

어떤 가지들은 하늘을

얽어놓았다 半달이

질려서 떴다

꽃은 달이 밟아가는 음계처럼

보라로

보라로

달렸다

 

 

납물 같은

납물 같은

납물 같은

저녁이 온다

저녁 바람이 분다

배가 고프다

내 생애보다도 훨씬 오래인 설움 같은 평화다

오동꽃보라가 진다

 

 

누가 이 평화를 쓸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짓씹은 입술들의 낙화를 쓸어서

저 새로 생긴 달을 키워낼 것인가

 

 

달은 한 음계를 더 딛어서

오동나무를 벗어나고

밤이 된다

 

 

이 생애는 악기가 될 것이다

나는 오동꽃처럼 떨어진다

 

 

 

 

*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문학과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