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무는 나무로 [이태수]
초록여신
2008. 9. 26. 09:23
있는 그대로를 껴안기로 했다. 뒤집고
뒤집다가 보면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비껴서 있을 뿐.
나무는 나무로, 돌멩이는 돌멩이로,
하늘의 구름은 하늘의
구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가 저만큼 떠나고 있는, 아니면
내가 이만큼서 서성이고 있는,
그 사이의 바람 소리를, 미세하지만 완강한
이 신음 소리를 껴안기로 했다.
이즈음은 물 소리나 바람 소리에
귀를 맡기고, 마음을 끼얹고, 숙명과도 같이
내가 택한 이 오솔길을
걷기로 했다. 터덜터덜 걸으며
길가에 피어난 풀꽃이나 버티어선 바위,
돌부리에도 눈길을 주고
오늘의 이 지상,
이 가혹한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떠도는 꿈을 지우며, 때로는
힘겹게 꿈을 돋우어내며
걷기로 했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풀잎은 풀잎으로, 아픔과 슬픔은
아픔과 슬픔으로,
지워질 듯 되살아나는 희망은 차츰씩
보듬어 안아올리기로 했다.
* 꿈속의 사닥다리,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