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 [김선우]

초록여신 2008. 9. 11. 11:33

 

 

 

 

 

 

 

 

 

 

무꾸라 했네 겨울밤 허리 길어 적막이 아니리로 울 넘어오면

무꾸 주까? 엄마가 할머니가 추임새처럼 무꾸를 말하였네

실팍하게 제대로 언 겨울 속살 맛이라면 그 후로도 동짓날 무꾸 맛이 오래 제일이었네

 

 

학교에 다니면서 무꾸는 무우가 되었네 무우도 퍽 괜찮았네

무우ㅡ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 스미듯 배는 흰빛

무우 밭에 나가 본 후 무우ㅡ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처럼

실한 몸통에서 능청하게 빠져나온 뿌리 한 마디 무우가 제격이었네

 

 

무우라고 쓴 원고가 무가 되어 돌아왔네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데,

무우ㅡ 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로 살 만한 거지

그래야 그 생것이 비 오는 날이면 우우우 스미는 빗물을 따라 잔뿌리 떨며 몸이 쏠리기도 한 흰 메아리인 줄 짐작이나 하지

 

 

무우 밭 고랑 따라 저마다 둥그마한 흰 소 등 타고 가는 절집 한 채씩이라도 그렇잖은가

칠흑 같은 흙 속에 뚜벅뚜벅 박힌 희디흰 무우寺,

이쯤 되어야 메아리도 제 몸통을 타고 오지 않겠나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2007)

 

 

 

 

.......

김선우 시인은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나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사람이라면 무보다 무꾸라는 단어에 더 정겨움을 느낀다.

아직도 부모님께선 무꾸라고 하신다.

그 구수한 무꾸라는 사투리에 슬쩍 앉아본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고향이 더 그립다.

비오는 오늘

우우우우우우우 빗소리가 무 소리마냥 귓전을 쨍,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