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대숲에서 [최영철]
초록여신
2008. 9. 10. 09:05
숭숭 하늘 향해 솟은 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곧고 푸른 지조가 만들어낸 텅 빈 육체에서
플루토 소리가 났다
위로 뻗어가느라 아무것도 품지 못한 생애가
한 번은 꽃 피고 한 번은 꽃 지고 싶다고
우수수 잎을 날려보냈다
나이를 숨기느라 마디진 등뼈 타고
초록을 물들이며 노랗게 솟는 대쪽의 亢進,
창공을 버티느라 굵어지지는 않고
다만 단단해진 울대가
무성한 잎을 떨어뜨렸다
위로 뻗기만 하는 삶을 받치려고
실타래처럼 엉킨 땅 아래 상념들 스산하게 흔들렸다
너 한 번 꽃 필 때마다 하늘 향한 가지 꺾이고
너 한 번 꽃 피려고 무너진 자리
우르르 몸 기댄 백로 제비꽃 와서 피었다.
* 일광욕하는 가구, 문학과지성사(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