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박형준]

초록여신 2008. 9. 8. 11:05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반쯤 열려 있는 절방

여자는 머리를 깎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무릎에 경전을 단정히 펴놓고 있다

들끓는 침묵을 안에 가두고 있다

남해 금산 푸른 물빛

고개 숙인 얼굴에 어른거린다

연꽃무늬 새겨진 문살에 앉아 있는

잠자리 한 마리

여자는 경전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는다

절 마당에 켜지는 石燈

반쯤 열려 있는 절방 문에 황혼이 번진다

암자 밑 천길 낭떠러지

잘 말린 날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날아가는 잠자리

 

 

 

 

 

*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창작과비평사(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