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세상의 모든 여인숙 [안도현]
초록여신
2008. 8. 30. 11:16
여인숙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입구에 서면 나는 빈 의자들하고 흥정을 하고 싶어진다 나를 다시 낳아줄래요?
맨 처음 나를 낳은 것은 어머니였지만 아랫도리를 내리고 나를 두번째 낳은 것은 여인숙이다, 그날밤의 나를 어머니, 다시 깨끗하게 낳아줘요, 매달리고 싶게 만든 것도 여인숙이다
가끔 나는 숙박계에 이 세상에 없는 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벽에 구름의 바지를 걸어놓고 잠든 적 있다 그런 어느날 번갯불이 유리창에 금을 그으며 지나가고 백열전구는 밤새 깜박거리며 어둠의 알을 낳았다
골목은 훌쩍 커버렸다 골목이 밖에 나가 놀다 오면 지금도 젖을 꺼내 물린다는 늙은 여인숙, 그녀가 골목의 어머니였다
세상의 모든 여인숙 간판의 불을 끄지 말자 비어 있는 방이 있다는 거다 몇겹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은 누군가 허벅지 비비는 밤을 보내고 있다는 거다 나이 든 어머니에게 애인을 붙여주자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