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정희성]
초록여신
2008. 8. 30. 03:04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ㅡ이진명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모래처럼
외로운지를 알았다
나의 불온성에 비추어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망가지는 것들이 한때는
새것이었음을
하지만 나에게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은 내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고
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엇일 거라고
결코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이념을 내려놓으라고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나는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알면서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 돌아다보면 문득 / 창비, 2008. 8 .30.
.......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그러하기에,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덜 망가진 것을 추스린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면 끝이다.
그런 순간을 오래도록 늦추기 위해서,
그 망가진 내 영혼을 달래본다.
시가 있어 치료는 가능하다는 충고를 받은 바 있다.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기에
난 지금 여기에서 잠시나마 망가진 그 조각들을 끌어 모으는 중이리라.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기에 수선을 하는 것이리라.
(망가진 나를 수선하며,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