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곳으로 [허수경]
초록여신
2008. 8. 30. 02:41
그곳으로, 백 년 동안 물을 기다리던 남자가 있는 곳으로, 그 남자가 그린 작은 말이 있는 곳으로 그 말이 달리던 검은 동공 같은 들판으로 그 들판이 그렇게 부지런히 기르던 민들레의 더운 솜 속으로 그 숨 속에서 백 년 동안 물을 기다리던 남자에게로 그 남자가 막아놓은 문 쪽으로 문이 걸어놓은 퍼런 별 속으로 다시 별 속으로 그곳으로 장갑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를 터엉 쏘아서는 내 창자를, 내 근본을 다 여는 그 폭력 속으로 그 속으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길가에서 물을 기다리던 남자는 땅바닥에다 말을 그리고 말이 달리는 들판에서 민들레는 더운 숨을 열어 오오 기다린다, 라는 인간의 언어를 헉헉거리며 쫓아오는 사제처럼 말하는 그곳으로
*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