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자작나무 여자 [최창균]

초록여신 2008. 8. 27. 07:56

 

 

 

 

 

 

 

 

 

그의 슬픔이 걷는다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올리는지

저물녘 자작나무숲

더욱더 하얘진 종아리 걸어가고 걸어온다

그가 인 물동이 찔끔,

저 엎질러지는 생각이 자욱 종아리 적신다

웃자라는 생각을 다 걷지 못하는

종아리의 슬픔이 너무나 눈부실 때

그도 검은 땅 털썩 주저앉고 싶었을 게다

생의 횃대에 아주 오르고 싶었을 게다

참았던 숲살이 벗어나기 위해

또는 흰 새가 나는 달빛의 길을 걸어는 보려

하얀 침묵의 껍질 한 꺼풀씩 벗기는,

그도 누군가에게 기대어보듯 종아리 올려놓은 밤

거기 외려 잠들지 못하는 어둠

그의 종아리께 환하게 먹기름으로 탄다

그래, 그래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종아리가 슬픈 여자,

그 흰 종아리의 슬픔이 다시 길게 걷는다

 

 

 

 

*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창비(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