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 [이규리]

초록여신 2008. 8. 26. 10:20

 

 

 

 

 

 

 

 

 

 

'잘 말하기는 반쯤 말하기'라고,

말하지 않은 반 토막이

아주 잠깐 캄캄한 반 뼘이

쉼표는 아닐까

반쯤만 말하고 아쉽게 헤어진 연인들이

돌아볼까 말까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다시 제 속도로 묵묵히 가는,

그런 순간

말보다 더 큰 울림

반 이상의 말이 휴지부에 있다

 

 

길을 잠시 끊는 개울이나

산자락이 숨겨놓은 느닷없는 절벽과 계곡은,

쉼표다

잘 흐르는 문장에 쏙 내민 혓바닥처럼

아찔한 붉은 꼬리점

좀 힘들겠지만

남겨둔 반쯤이 내일을 물고 온다

쪽잠처럼 자세를 다 풀지 않는 휴식

쉬어 가라고, 좀 조절하라고

뭣보다 체하지 말라고

딱 한 음절, 한 걸음이

전 문장을 꽉 잡고 있다

 

 

 

 

* 뒷모습, 랜덤하우스(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