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명치에 치명적인 붉은 점이 [길상호]
초록여신
2008. 8. 19. 13:09
불안은 늘 명치끝에서 왔다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덮개도 없이 높여 있는 우물, 두레박이 닿을 때마다 사이렌의 파장이 물결쳤다 얄팍하게 쌓아놓은 우물의 내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명치에 줄 내렸던 그녀 시원한 물이 아니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물살의 그림자만이 끌어 올려놓고 더 목이 말랐다
그녀 떠난 자리에 서서 돌을 주워 우물에 던져 넣었다 구멍을 다 메워버리려, 모든 파장 돌무덤 속에 눌러놓으려, 첨벙 첨벙 돌을 던질 때마다 헉, 헉, 헉 숨이 막혔다 급소를 맞추고서 돌은 입이 더 무거워졌다 첨벙, 물소리 속으로 가라앉은 침묵이 궁금해 우물 들여다보았을 때 아, 거기 깨진 얼굴로 피 흘리는 아버지의 그림자
집 나간 아버지의 명치에도 붉은 점이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다며 손바닥으로 자주 명치를 누르곤 했다
* 모르는 척, 천년의시작(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