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모르는 척, 아프다 [길상호]

초록여신 2008. 8. 19. 09:15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 없이 떠돌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네가 없어도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녘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 모르는 척, 천년의시작(2007)

 

 

 

......

숙취에 내갈기는 오줌 소나기에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지요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내 발 밑의 개미와 풀과 돌멩이들은 아, 아, 아, 속울음을 토해내겠지요

띠리링 띠리링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슬픈 소식을 전할 때는 모르는 척, 아프겠지요.

모르는 척,

슬쩍,

아프다는 모든 소리를 외면한 채

나만 아프다고 내 아픔만 알아달라고 소리친 것 같아요.

내가 아프듯이 당신들도 아픈데 말이죠.

모르는 척, 아프다는 당신들의 작은 귓속말에 복합마데카솔 슬쩍 내밀어 봅니다.

상처가 있다면 보여 주세요. 호호호 불어드릴게요.

(모르는 척, 알고 싶어지는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