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담쟁이꽃 [마종기]

초록여신 2008. 8. 17. 19:49

 

 

 

 

 

 

 

 

 

 

내가 그대를 죄 속에서 만나고

죄 속으로 이제 돌아가느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꽃은

깊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죄 없는 땅이 어느 천지에 있던가

죽은 목숨이 몸서리치며 털어버린

핏줄의 모든 값이 산불이 되어

내 몸이 어지럽고 따뜻하구나.

 

 

따뜻하구나, 보지도 못하는 그대의 눈.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다며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무진한 꽃 만들어 장식하던가.

또 몸풀 듯 꽃잎 다 날리고

헐벗은 몸으로 작은 열매를 키우던가.

 

 

누구에겐가 밀려가며 사는 것도

눈물겨운 우리의 내력이다.

나와 그대의 숨어 있는 뒷일도

꽃잎 타고 가는 저 생애의 내력이다.

 

 

 

 

 

* 이슬의 눈 / 문학과지성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