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자존심 [김상미]
초록여신
2008. 8. 17. 15:07
세계지도를 펼친다
서로 죽인 자, 서로 죽임을 당한 자들이 만든
서로 죽이는 자들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살아남은 자들이 만든
무수히 많은 피의 강을 건너왔지만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피의 강을 건너가야 하는 자들이 만든
지금도 한창 살육이 계속되고 있는
핏물로 뒤덮인 세계지도
그 위에다 나는 쓴다
잘 지내고 있냐고요?
그럼요, 총도 칼도 가진 게 없지만
내게는 아직 힘이 있어요
인간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는 자존심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가장 아름답다는 인간의 자존심이!
* 2008 만해축전 기념사화집(시와 세계가 읽은 2008, 새로운 시) / 시와세계, 2008.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