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마음의 눈금 [고운기]

초록여신 2008. 8. 15. 14:25

 

 

 

 

 

 

 

 

 

뒤주에 담기는 쌀의 높이가 삶의 높이였다

어린 내 키만한

뒤주의 크기가 우리 집 살림의 크기였다

 

 

거기 채워 넣던 쌀아 보리야 밀아

 

 

내 몸무게를 재던 척도尺度

집을 사던 단위

물가를 따지던 기준

대학을 보내던 스무 살짜리 눈물......

 

 

내 몸은 저울이 되고 추가 달리기도 했다

 

 

어느새 한 됫박 달 때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경험을

내 몸을 살찌우려 스쳐갔던 숱한 거래의 순간을

그런 야무진 울림의 세월을

어느덧 내 마음이 읽고 있다

살아 있는 눈금이다.

 

 

 

 

*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 200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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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기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섬강 그늘』『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가 있다. '시힘' 동인. 더불어 『삼국유사』연구자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등 다수의 관련 서적을 활발히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