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또 다른 생각 [이수익]
초록여신
2008. 8. 4. 12:40
뭉개지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을 사는 데에는
내가 각(角)을 지움으로써 너를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다. 선창에서
기름때 절은 배들끼리 서로 부딪치듯이
부딪쳐서 조금 상하고 더러 얼룩도 생기듯이
그렇게, 내 침이 묻은 술잔을 네가 받아 마시듯이
네 숟가락 휘젓던 된장국물을 내가 마시듯이
그렇게,
서로 친밀해지는 것이다.
자, 자,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마셔!
취한 기분에 붙들려 버럭 소리도 내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시간도 참으로 필요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도 소중하다.
시퍼렇게 가슴에 날을 세우고
찌를 듯이 정신에 각을 일으켜
스스로 타인 절대출입금지구역을 만들어내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배신하고 모반하는 일은
네개는 매우 소중한 덕목이다.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침 뱉고 저주하라, 그대
불행의 작두 위를 걸어야 할 시인이여.
*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천년의시작(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