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의 장례 [김경주]
하늘에 포르말린 흩어진다
그건 구름이 풍선의 장례를 치르는 일
구름이 하늘에서 풍선 속으로 통과한다
저녁은 공중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
내려온 공중에 가득 찬 수면을 바라보는 일
다른 선으로 빛이 떠내려가는 일
떠내려가는 빛이 기어이 새가 되고 마는 일이 있다
그 빛을 문장으로 이장하는 일 그건 내가 이 세상에서 바꾸어
부르기로 한 일, 문장의 일
구름이 허적허적 게워내고 있는 풍선
혁명, 다른 피를 벤 구름
연필이 마신 등고선들
떠오르는 순간 장례를 치르는 문장
음울한 한 짐승의 물방울
죽은 다음에야 풍선을 비울 수 있는 육체,
그건 내 나비의 실내에 부검이 못 들어오는 일
나는 배 다른 구름의 일
표본실엔 물방울짐승
*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시 / 현대문학, 2008.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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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광호(문학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이 시인의 상상적 문장들은 풍선처럼 가볍고 장례처럼 무겁다. "공중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저녁은 "문장으로 이장하는" 시간이다. 그 '이장'의 시간에 화자는 두 가지의 상상적 맥락을 개입시킨다. "떠오르는 순간 장례를 치르는 문장"처럼 그 이장은 "이 세상에서 바꾸어/부르기로 한 일, 문장의 일"에 관계된다. 그것은 마치 "다른 피를 벤 구름" 같은 '혁명'이다. 또 하나, "죽은 다음에야 풍선을 비울 수 있는 육체"는 부검할 수 없는 육체, 그 육체는 "떠오르는 순간 장례를 치르는 문장"과도 같다. 그래서 '풍선의 장례'는 가볍고도 장엄한 문장들의 장례, 시언어 자체의 장례이다. 부검할 수 없는 언어들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