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수신자 요금부담은 비싸다 [장철문]
초록여신
2008. 7. 28. 19:54
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큰형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고, 김부장에게 조퇴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강물은 한여름의 은편(銀片)을 날리고, 덩굴풀은 새파랗게 언덕을 기어오르고, 뭉텅뭉텅 뜯어던진 듯 하늘에 구름이 갔다. 실신과 잠이 구별되지 않는 조카아이를 들쳐업고 영안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즉사했대"라고 속삭이며 지나갔다. 쥐약 먹은 셰퍼드처럼 등짝에 늘어붙어 있던 아이가 난데없이 쇠가 깨어지듯 "개새끼"라고 웅얼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새된 저주가 정수리로부터 등허리를 지나 발바닥에 흥건했다. 그 밤에 아버지는 책상을 찍었고, 작은형은 화환을 던졌고, 나는 사과상자를 깃발처럼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
가끔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형이 어디엔가 통신회로를 묻어두었다. 나도 가끔은 그 회선으로 전화를 건다. 말은 짧을수록 좋다. 형이 요금을 얼마나 지불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한번도 청구서를 받은 적이 없다. 형이 전화를 걸 때는 "괜찮지?"라고 묻는다. 나는 듣는다. 나는 형보다 나이가 많지만, 언제나 동생이다. 내가 형에게 걸 때 "별일 없지?"라고 묻는다. 형은 듣는다. 형은 이제 가족이 아니지만, 언제나 가족이다. 휴대폰을 눌러, 작은형과 통화할 때도 대개 그렇다. 형제란 말수가 적다. 라이벌끼리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
* 무릎 위의 자작나무 / 창비, 2008.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