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슬픈 열대 [문혜진]
초록여신
2008. 7. 28. 18:54
열대의 얼음산
태풍의 눈
연소되는 구름의 느린 운명
피서지의 살의 없는 개,
고속도 영화 속의 빨리 지나치는 푸른 야자수
창조 첫날의 첫 번째 햇빛
시체를 강간하고 돌아오던 밤
너는 화산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지졌다
살점을 제 입으로 꼭꼭 씹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땅 속 깊은 관 속에서
갓 썩어 짓무른
모르는 여인의 타액 맛
너를 안고
움푹 들어간 살점을 토닥인다
세기가 폭우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후끈 달아 표류하는 바람 덩어리,
서식지를 잘못 찾아온 새들이
후드득 자리를 뜬다
너는 바위에 물개처럼 누워서
고래들이 몰려와 한꺼번에 죽어간
그 해변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다시는 해변에 오르지 마
우리는 오랫동안
상처를 잡고
숨을 불어넣으며
검은 지느러미 속에서 울었다
고래 고기를 씹는 동안
또 몇 세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역사는 우리의 뒤편으로 피 냄새를 풍기며
귀를 막고 빠르게 지나갔고,
사람들은 미라가 되었거나
냉동 인간이 되었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로 나가
고래잡이를 한다
* 질 나쁜 연애,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