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무서운 속도 [장만호]

초록여신 2008. 7. 23. 17:10

 

 

 

 

 

 

 

 

 

 

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 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나레이터는 말한다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12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이제 저 차 속으로는 물이 스며들고

엔진은 조금씩 멎어 갈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 있을 것인가.

서서히 한없이 죽어 가는 고래가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지듯이 가 닿는 시간과

한 번의 호흡으로도 30분을 견딜 수 있는 한 호흡의 길이

사이에서, 저 한없이 느린 속도는

무서운 속도다 새벽의 택시가 70여 미터의 빗길을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무서운 속도로 들이받던 그 순간

조수석에서 바라보던 그 깜깜한 심연을,

네 얼굴이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 가고

모든 빛이 한 점으로 좁혀져 내가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 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링거의 수액이 한없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고래야, 고래야 너는 언제 바닥에 가 닿을 거니.

 

 

 

 

 

* 무서운 속도 / 랜덤하우스, 200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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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호

1970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수유리에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