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삶은 감자 [황인숙]
초록여신
2008. 7. 16. 16:07
이건 확실히
잘못 선택한 밤참이다
한 번이라도 감자를
삶아본 적이 있는가?
스무 번도 더 냄비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렀다
열대야처럼 푹푹
김 속에서 감자를
生을 수그리지 않는다
쉭쉭거리며 가스불은 시퍼렇게 달려들고
냄비는 열과 김을 다해 내뿜고
감자는 버티고 있다
덥고 지루한 싸움이다
눈꺼풀이 뻣뻣하고 무겁다
이렇게까지 해서 감자를 먹어야 하나?
한 번 더 찔러보고 아직 아니라면
그냥 자야겠다
우, 삶은 감자!
*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