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바보사막 [신현정]

초록여신 2008. 7. 12. 23:03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처음 낙타를 타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 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 모래사막 / 랜덤하우스, 2008. 7. 1.

 

 

 

 

.......

 여기서 사막이 우주적 운행의 질서 안에 존재하는 고행의 공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막 여행은 출발의 동기도 목적도 없는 무의미의 여로라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 그러함과 같다. 유토피아는 영원한 피안일 뿐 우리의 삶은 사막을 걷는 수행의 시간이다. 그래, 인간이란 '바보사막' 한가운데 피투披投된 우연적 존재다.

 우주는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운행한다. 그러니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화자가 상상하는 사막 여행은 단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만을 지닌 채(낙타, 가죽 수통) 우주를 머리 위에 이고(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걸어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마침내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자 화자는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 '굳기름脂肪'을 꺼내 먹는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낙타를 죽일 수밖에 없지만, 그 "모래 위의 향연"은 최후의 만찬인 셈이다. 낙타 없이 더 이상 사막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진 자에게 생에 대한 최후의 의지는 결국 자기 파괴, 즉 타나토스의 본능을 호출한다. 바보사막! 이는 피할 수 없는 생의 한 국면이다. 최후의 항연을 위한 고행의 시간이 바로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놀이는 때론 아프고 처연하다. 유쾌하지만 슬프고 행복하지만 눈물겨운 그의 시는 잘 익은 젓갈처럼 딱 그만큼의 감칠맛으로 다가온다. 모질고 독한 관념으로 지어진 시는 짜고, 성기고 허술한 의식으로 지어진 시는 싱겁다. 걸러지지 못한 날生 고통으로 채워진 시는 맵고, 아픔도 없이 쓴 시는 무미無味하다. 시의 관념의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무미의 향연이 아니다. 자기 혼자 힘든 척 엄살 피우는 시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다면, 작위적 수법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기성품 같은 시에 싫증이 났다면, 그리하여 맑고 천진한 언어로 세상을 끌어안는 포월의 시를 읽고 싶다면, 불꽃처럼 터지는 행복한 웃음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신현정 시인의 시를 읽을 일이다. 『바보사막』으로 여행 가실 분들, 선착순으로 집합!

ㅡ 김정남(문학평론가), 작품해설 2 [신현정 시인의 '시詩야,  놀자!' * <아름답고 황홀한 놀이의 진경珍景>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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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바보사막』에 수록된 시를 중심으로 신현정 시인의 시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것으로서, 그간 필자가 쓴 '작품론' '시인론' '계간평'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고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