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장마 [신현정]

초록여신 2008. 7. 12. 22:28

 

 

 

 

 

 

 

 

 

종일 비 내리고요

 

 

텔레비전도 몇 번을 켰다가 꺼고요

 

 

팔 쭉 올려 기지개도 켜고요

 

 

목도 돌려보고요

 

 

그때 옷장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났던 것이다

 

 

집 나간 아내가 넣어둔 하마였다

 

 

물을 먹고 있었다

 

 

난 그만 좀 먹으라고 작작 내리라고

 

 

장마야 뒤로 나자빠지라고

 

 

물 먹는 하마의 탱탱한 장딴지를 걸고서는 힘껏 밀어젖혔다

 

 

글쎄 그게 아니었다

 

 

종일 비 내리고요

 

 

비 내리고요.

 

 

 

 

* 바보사막 / 랜덤하우스, 2008. 7. 1.

 

 

 

 

 

 

.....

 종일 비가 내려, 심드렁하게 가라앉아 있던 화자는 텔레비전을 켰다 끄고, 기지개도 쭉 켜보고 목도 돌려본다. 이때 옷장에서 뭔가 소리가 나, 문을 열어보니 아내가 넣어둔 하마가 물을 먹고 있더란다. 화자는 하마와 장마에게 각각 한마디씩 던진다. 하마에게는 "그만 좀 먹으라고", 장마에게는 "작작 내리라고". 계속 되는 장맛비로 인해 심사가 뒤틀린 화자는, 하마에게 화풀이를 하듯, 물 먹는 하마의 탱탱한 장딴지를 걸고서 힘껏 밀어젖힌다. 이를 희극적 환상성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 이어 화자는 스스로의 이상한 행동에 "글쎄 그게 아니었다"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계속되는 지루한 장마는 시인이 제시한 희극적 상황으로 인해 기분 좋게 쏟아지는 해학의 빗줄기로 바뀐다.

ㅡ김정남(문학평론가), 작품해설 2 [신현정 시인의 '시詩야, 놀자!'<아름답고 황홀한 놀이의 진경珍景> ]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