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 [김정환]

초록여신 2008. 7. 9. 10:36

 

 

 

 

 

 

 

 

 

 

 

생각해보면

역사가 발전을 안 해왔던 것은 아니다

헐벗음은 바뀌었다 의상뿐 아니라

의미도

헛된 것은 없다 처절한 죽음도 죽음의 영역을 넓히지 않고

우리 가슴에 역사의 무지개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약동한다 밤은 수십만 촛불 시위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생각해보면

울화가 우리를 크게 좀먹어왔던 것은 아니다

슬픔도 억울할 것은 없다 슬픔 끝에 성취된

보람을 끝내 슬픔으로 아름답게 한다

 

 

따져보면

희망이 빛을 바랬던 적은 없다

희망은 역사 바로 그만큼

고전적으로 젊어져왔다

젊음의 고뇌와 역사의 고뇌가

중첩되는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다

그리고

시대는, 젊음은, 시대의 젊음은

그것으로 더욱 찬란하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

정치가 우리들 봄날의 대지를 갈아엎는

아름다운 미래 전망이던 때가 있었다

 

 

인간이 발명한, 인간적인, 인간적으로 찬란한

삶의 질을 높이는 첩경이었던

정치가 있었다

 

 

만인이 모여 만인의 의사로 정신의 바벨탑을 짓는

그리고 마침내 하늘을 능가하는

인류문명의 자긍심이었던

 

 

정치가,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를 진지하게 만들던

때가 있었다.

 

 

 

 

 

* 레닌의 노래 / 문학 판(열림원), 2006.

 

 

 

.......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로 이어지는 3단 논법의 접속사를 통해 현재를 생성하는 질료로서의 과거의 의미가 제기되고 있다. "처절한 죽음"이 "죽음의 영역을 넓히지 않고" "역사의 무지개"를 만드는 질료였다. "울화", "슬픔", "고뇌" 역시 중첩되면서 절망적인 어둠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 더욱 "찬란"해지는 동력이 되었다. 지난 시대의 저항과 번뇌의 고통이 고통의 연속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인도하고 밝히는 등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노화되지 않고 "고전적으로 젊어져왔다".

 여기에 이르면, 김정환의 기억의 시간의식에 대한 집중적인 탐색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에게 기억의 양식은 과거에 대한 조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통찰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이를테면, "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를 진지하게 만들던/때가 있었다." 바로 그 기억의 역사는  이 땅의 진보를 열어놓는 영원한 계기이다.

홍용희(문학평론가), 해설 [간절한 시간의 기억] 중에서 발췌.

 

 

 

먼 훗날, 우리의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하나, 하나의 힘없는 촛불이 모여 모여 큰 함성으로 민중의 광장을 수놓았던 그 열기의 현장을.

누군가는 힘없는 자의 발악이라고, 군중심리를 영웅심리로 치부하곤 했지만...

역사는 알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 진지했음을.

오로지 金을 더 빼앗아가기 위해

그대들은 정치,라는 길에 들어섰단 말인가?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

누군가는 그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줄 것으로 믿는다.

이것이 시대에 대한,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