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낙타에 대하여 [김수영]

초록여신 2008. 7. 8. 12:45

 

 

 

 

 

 

 

 

 

슬픔이 증오보다 뜨겁다

바위를 깎는 바람이 거대한 모래 언덕을 만들고

모래 알갱이들을 날림으로써 그 언덕조차 없애지만

사막의 뜨거움은 변함이 없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죽인 새끼를 묻고 암낙타를 끌고 간다

거품 같은 침을 뱉으며 무릎을 구부리는

그들의 긴 속눈썹 뒤 이글거리는 어두운 눈

 

 

그들은 돌아온다

거친 살갗  위에 모래가 덮이고

오랜 시간 모래는 고운 먼지로 살갗을 파고들어

하나씩 혹은 둘씩 부드러운 궁륭이 되어

영원히 건너지 못할 모래 언덕과 마주선다

 

 

 

 

*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 창작과비평사, 1998.

 

 

 

 

.......

슬픔이 증오보다 뜨겁다

여름의 햇살은 증오보다 더 뜨겁다

사막을 건너보지 않은 사람은 낙타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무더위에 땀 흘려보지 못한 자 또한 그 무더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저 사막에 영원히 건너지 못할 모래 언덕이 있다면

오늘의 이 땅 위에는 피해가야만 하는 더위의 강이 있다

팥빙수 꽁꽁, 우유와 키위와 미숫가루 몇 숟가락을 훌훌훌 털어 넣으면

그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그 꽁꽁의 얼음을 숟가락에 담아 목을 축이며  '낙타에 대하여'를 읽는다.

그 낙타는 오아시스를 곧 발견할 것이라며 넌지시 웃어준다.

 

(더위의 강을 건너며,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