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풍뎅이 [김수영]

초록여신 2008. 7. 4. 12:52

 

 

 

 

 

 

 

 

 

 

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

백년이나 천년이 결코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 있기 때문이 아니리라

추한 나의 발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

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

늬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

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 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

의심할 것인데

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

미끄러져가는 나의 의지

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

 

 

 

 

 

 < 1953  >

 

 

 

 

 

 

* 김수영 전집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