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오이에 관한 편견과 중독 [이민하]
초록여신
2008. 7. 2. 18:00
사각사각 살갗을 쓸어내리는 칼날.
파랗게 뜯겨지는 소름들.
당신의 냉장고엔 왜 오이가 줄지 않는 거야.
오이는 사슬. 밤마다
나를 향해 내미는 오이는 플러그.
오이는, 손가락의 기원이군.
이쯤에서 손가락을 내놓아봐.
헨젤의 가느다란 막대 말고 당신의 진짜 손가락.
막대 손가락을 가득 안은 너의 노크와
진짜 손가락에 살이 붙는 나의 조크와
손가락의 무게로 짓눌리는 몸.
뚱보라는 누명.
날마다 손가락을 훔쳐보며 아작아작, 우리의 듀엣.
마녀인 나는
마법을 걸어 과자로 만든 집에 너를 가두고
그레텔인 나는
마녀를 불에 태울 아궁이도 지피고 있지.
흡반을 정숙하게 벌리고
몸의 잔가지마다 수분을 끌어모으네, 방류될 듯
물고기의 씨앗들, 야채 시장에 활활
불이 나도 품절되지 않는 리듬.
날마다 손가락을 되씹으며 출렁출렁, 나만의 듀엣.
드디어 누명을 벗으려나봐요. 아아 아버지,
당신의 냉장고보다 환한 열 개의
손톱마다 노란 꽃이 피어나다니.
* 음악처럼 스캔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