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뽈랑 공원 [함기석]
초록여신
2008. 6. 25. 18:26
뽈랑 공원의 아름다운 정문이 열린다
꽃밭에서 햇빛과 나비들 춤춘다
뽈랑색 벤치들이 보인다
뽈랑새 두 마리 자유로이 공원을 날고 있다
물푸레나무 아래 꽁치처럼 예쁜 여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가 젖을 빨다 스르르 잠이 들자
여자는 하늘 한복판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준다
찢어진 하늘에선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여자는 유모차에서 책을 꺼낸다
아기를 위한 자장가 뽈랑송을 부르며 책장을 넘긴다
여자가 책을 보는 동안 아기는 꿈꾸고
물고기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헤엄쳐 다니다
책 속으로 사라진다
한 청소부가 후문에 나타난다
이상하게 생긴 뽈랑 빗자루로 공원을 쓴다
그러자 공원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꽃밭이 사라진다
벤치들이 사라진다
나무들이 사라진다
하늘이 새들이 빛이 시간이 차례로 빨려들어가고
여자가 사라지면서 손에 들려 있던 책이
청소부 발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책을 주워 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말들이 피운다는 뽈랑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책을 펼친다
20페이지에 뽈랑 공원이 나타난다
함기석이라는 휴지통이 보인다
여백이 되어버린 하늘이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행간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라진 새들은 사라진 빛을 향해 날아가고
여자가 머물던 물푸레나무 그늘 속에서
투명한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온다
샘물이 된 아기 울음 흘러나온다
* 뽈랑 공원, 랜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