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햇빛 [이기인]

초록여신 2008. 6. 25. 09:48

 

 

 

 

 

 

 

 

 

 

브래지어를 말리는 시간

햇빛은 열심히 가슴으로 들어왔다

 

 

세월이 흐르면

어머니의 가슴은 주인 없는 봉분처럼 착하게 무너져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들통난 젖을 빨고 있을 것이다

애인의 까만 젖꼭지엔 입김을 불어넣을 것이다

 

 

빨랫줄은 열심히 가슴으로 들어왔다, 나가면서

상처를 말린다

 

 

 

 

 

*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 창비, 2005.

 

 

 

 

......

며칠 전에 서점에 스치면서 보았던 [공주들을 위한 소녀백과]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10권 정도는 된 것 같다.

왜 [왕자들을 위한 소년백과]는 없냐고 되묻다가 돌아섰다.

그 예전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여성백과]가 성행했었다.

여성들이 많이 근무하는 회사로 책판매원 아저씨가 방문해서 모든 여성들을 공주로 대접하며 엄청난 그 [여성백과]를 팔았었다고 했다.

대학시절, 갓 결혼한 언니의 집에 놀러갔다가 호기심에 몇 권 들썩여보곤 했었다.

아마도 시대가 시대인만큼 성숙한 요즘 아이들은 그 책을 보는 순간, 이미 숙녀가, 공주가 되어 있을 것만 같다.

결혼을 위한 필수품이 아닌, 여성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백과 쯤으로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시의 제목과는 다르게 흘렀다.

그렇다면, 이 시집은 그 소녀들을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