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분교 근처 [장석주]

초록여신 2008. 6. 11. 10:52

 

 

 

 

 

 

 

 

 

 

오전 내내 땡볕 아래서

대추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를

각각 열 주 씩 심는다.

점심 무렵 삽 뉘어놓고

조껍데기술 한 병을 비우는데,

취기가 빠르게 퍼진다.

日光으로 타오르는 분교 운동장,

맨드라미 볏도 빨갛게 타오른다.

저 극렬분자들!

안성 장날에 산 깔개를 들고

느티나무 그늘을 찾아 한잠을 잔다.

잠깬 뒤 약수터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어느덧 해가 졌다.

태정이네 도라지밭 둔덕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하자니,

내게도 지나간 일이 많았구나.

 

 

분꽃과 채송화와 해바라기를 심고

독신으로 살았더라면

아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나이가 쉰 줄에 접어드니

세상을 바꾸겠다는 당찬 꿈도 엷어진다.

눈물샘이 마르니 꿈도 마른다.

꿈이 마른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다.

밥알이 입 안에서 까실거리는 생활,

나는 조령분교 옆 마을에 살고

딸은 먼 곳에 가 있다.

밤이면 반딧불이 몇 마리

푸른 인광을 달고 떠다닌다.

 

 

 

 

 

*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