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봄바람의 엔진을 타고 [정유화]
초록여신
2008. 5. 10. 10:09
오늘은 몸 속에 장착된 오토바이와 트럭의 엔진을 끄고
봄비가 씻고 간 문장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는데
진달래가 쓴 문장에는 파란풀 떠서 흐르듯이 강변 모래밭으로 가는 청춘남녀들이 있고
개나리가 쓴 문장에는 주름치마를 곱게 차려 입은 어떤 아가씨가 색바랜 편지를 십 년 넘게 읽고 있었고
어깨동무하며 양지바른 땅을 차지한 쑥들의 문장에는
초파일을 맞아 대둔사 숲으로 구경가는 할매들, 아지매들, 그리고 할매의 손자들을 길게 휘어진 시냇가가 앞장서 길을 안내하는 풍경이
나비가 흔들리며 쓰는 문장에는 실타래 같은 긴 문장이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고 손닿을 수 없는 저 무한의 공간으로 남실남실 가는지라 읽어 볼 수가 없네 마음만 따라가서 가 닿을 수 있는 문장일까
한 마리의 새가 날아가며 쓰는 문장은 아름다운 빛깔의 문장일까 추락하는 연민의 문장일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뭇가지들이 그 문장을 재빠르게 걷어가는데
바람이 분다 봄바람의 엔진을 타고 지나간 봄비를 따라가 보고 싶다.
보리밭 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천년의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