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지난해 모아두었던 봄바람 [정유화]

초록여신 2008. 5. 10. 10:02

 

 

 

 

 

 

 

 

 

 

지난 해에 모아 두었던 봄바람을

방사해 주었더니

닫힌 구멍을 열고 다니네

개나리 아랫도리에도 온통 구멍이 열리네

벚꽃나무 어깨에도 구멍이 열리는지

낭자한 빛이 쏟아지네

나는 그 빛을 비단 보자기로 받았다가

한 움큼은 이때껏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한 친구에게 소포로 싸서 보내고

한 움큼은 예전에 스쳐지나가다 마주쳤던 처녀에게도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고

또 한 움큼은 강변 모래밭에 뿌리기도 하다가

그 빛 다 보내고 나면 구멍들이 서러워 할까봐

다음 봄에 쓸 요량으로 보자기를 곱게 묶어 놓았네

몸의 내부를 환하게 만드는 구멍들이여.

 

 

 

 

 

*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천년의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