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초록에도 오래 머물면 [정유화]

초록여신 2008. 5. 10. 01:57

 

 

 

 

 

 

 

 

 

 

 

숲 속의 여름나무들은 진초록이 무겁다고

구름에게도 던져버리고

바람에게도 밀쳐주고

시냇가에도 쏟아 놓기도

어떤 나무는 지나가는 사람의 배낭에

손을 길게 뻗어 진초록을 쑤셔놓고선 손바닥을 털며 가볍게 일어서기도 하지만

진초록은 나무들의 어깨와 이마를 떠나지 않는다

진초록은 나무들의 살아 있는 무덤

초록으로 비틀거리며 주저앉을 듯하다

초록에도 너무 오래 머물면 생의 감옥

이제 나무들은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흔들거린다

골목까지 밀려와서 질퍽질퍽 하는 진초록

지붕이 무너질 듯이 쌓이는 진초록

이 권태.

 

 

 

 

 

*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 천년의시작,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