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바람난 [서상영]

초록여신 2008. 5. 6. 10:25

 

 

 

 

 

 

 

 

 

 

 

 

 

내 마음에서 바람이 난다

내가 알 수 없는, 내 깊은 곳에서

시작된 바람은

함부로 몸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한다

그런 날이면 유독 푸르게 드리워지는

마음의 하늘만 쓰다듬는다

그러 날이면 유독 가까이 다가앉는

마음의 바다만 뒤흔든다

바람이 거세진다

내 몸은 더욱 뜨거워지고

심장이 허파가 부어오른다

창자가 살가죽이 뒤틀린다

파도가 일어나 하늘을 가리고

비바람 몰아친다, 그렇게

시린 얼굴 하나 떠오른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고통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터, 터지지도 못하는 몸이

부르르 떤다

더운 습기가

등이며 사타구니며 눈으로 촉촉이 배어난다

 

 

오늘

지구도 바람이 났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지구의 깊은 곳에서

시작된 바람은

강을 뒤틀고 산을 무너뜨렸다

풀, 나무, 인간들을 들볶았다 지구의 내장들을

지구는?

누구를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 꽃과 숨기장난 / 문학과지성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