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고요 [황동규]
일고 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
왁지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
'노래하며 질 수도......'
'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
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
'음, 후렴이 아닌데!'
* 꽃의 고요, 문학과지성사.
.......
시집 「꽃의 고요」는 무언가 의미를 이루기 전에 먼저 올리는 마음의 공명을 노래하는 시집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꽃이 피는 자연현상들과, 일상의 무늬를 이루는 사소하거나 복잡한 살의 사건들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들 속에서 의미화되기 이전의 마음의 섬세한 움직임들을 포착한다. 마치 불타와 예수의 대화가 대화라기보다는 두 존재의 마음의 공명을 들려주듯이...... 시인은 세상 모든 존재의 시간에 귀를 기울인다.
(시집 「꽃의 고요」앞 표지글에서)
마음을 열고 꽃에게 살짝 귀를 기울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법의 귀가 반짝 꽃의 심정을 들려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만개 뒤의 조용할 수 밖에 없는,
고요할 수 밖에 없는,
쓸쓸한 꽃의 속앓이를 듣게 될 것입니다.
"꽃들아, 안녕. 내년에도 또 우리 동네로 놀러와" 라고 말해 보세요.
"응, 알았어."
"그래, 내년에 또 보자."
"그래"
부끄러워 고개숙인 꽃잎의 간지러움은 그 약속의 징표가 아닐까요?
오늘, 슬쩍 꽃과의 다정한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