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心琴) ....... 신동옥
꽃을 보고, 저만치 혼자라고 적은 사람
아무래도 나는 조금 비껴서 있다고 적은 사람이 있지만
내 꽃잎에는 사자 한 마리가 먼저 가 앉는다 피를 흘린다.
꽃그늘 멍석에 앉아 술잔 띄울 만한 계곡을 베고 눕는 계절이면
가슴에 손을 얹는다. 국기에 대고도 맹세할 바 없는 나는
무제한으로 채워지는 꽃잎 사자 우리를 또 비워내는 거다.
내 꽃나무 아래는 언제나 불타는 겨자 소스 접시가 놓인다.
글 한 줄에 페이소스 한 접시 그게 삶이라고 말할 때
나를 읽고 가는 친구, 자네는 또 여리다고 타박을 하지만
자정의 판옵티콘 창살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까뒤집던 베를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하필 내가 여자였지, 아니었을까?
어제의 꽃 속에서도 총소리가 들렸다고 쓰면서 나 역시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거다.
왜 하필 내가 남자였지!
입춘(立春) 지나고 대길(大吉) 지나고 건양다경(建陽多慶) 지나 앉아보는 뾰족한 마음의 자리 건너
옮아가는 꽃잎에 실어 보낸다 그것은 내가 자네에게 보내는 새떼.
이만치 혼자 있는 내게 친구, 술잔 들이미는 자네의 손뭉치는 차라리 따뜻한 빵이었다.
악수를 청하던 손은 금세 주먹으로 변하고 1월에서 4월로
움켜쥔 주먹 언덕을 오를 때면, 검지와 중지 사이는 언제나 허방이었다.
눈 비비고 보면 열심으로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틔워내는 꽃은 오간 데 없고
없는 묘혈(墓穴)에서 내가 마주하는 것은 바로 자네,
자네는 시퍼런 레몬처럼 씁쓸하게 웃는다.
꽃 진 자리마다 무성한 혓바닥
그 벼린 창칼 아래 마주하는 것은 어제하고도 어제의 꽃그늘
술잔 비울 때마다 다른 격문 다른 사발통문.
내 사자는 벌써 건너 건너의 꽃나무로 뛰쳐나간다.
한없이 가벼워져 두 팔 벌리면 날 듯한데, 친구
자네의 눈빛은 내 등배를 훑고 내 두 다리는 지상에 비끄러매다오.
까칠한 멍석에 돌 틈 바위틈에 그늘 습지에 그 불립자(不立字) 위에
저만치 혼자 있는 거 이만치 저 혼자 갈앉는 거
술잔 띄울 때마다 듣는 꽃사태ㅡ파문은 총소리 아닌가? 어제의 꽃잎 속에도
꽃잎 하나에 불타는 사자 우리
친구, 나는 그것을 겨눈다.
*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 랜덤하우스,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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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197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시와반시>> 신인상 공모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
인스턴트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인의 말
아침에는 인두겁을 벗어 벽장에 걸었다. 간신히 1인칭이 되어 거리로 나섰다. 바람처럼 샛길로만 다녔다. 걸음을 멈추면 외계의 종점으로 몸이 먼저 옮아갔다. 무수한 낱낱의 표정들, 일사불란한, 상처도 구체적으로, 아픔도 구체적으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도 않았다. 낮에는 허무하려 애썼다. 혼자였고, 혼자이며, 혼자이기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우주(宇宙)가 주검이 되어 식탁에 놓인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테다.
방문을 열면 시린 무릎이 먼저 들어가 앉는다. 밤이면 냉정하려 애썼다. 부드럽게 부푸는 흰 종이의 척후병(斥候兵), 한 꺼풀씩 몸에 들씌운 인두겁을 벗어 재웠다. 일그러진 가면을 차곡차곡 재웠다. 그것은 번번이 비정한 울음이었다.
여기 한 권의 시집이 당신 앞에 놓였다. 행간에서 심장까지 가닿는 간극을 손톱으로 헤아미려, 책갈피를 넘기는 당신의 손가락도 있다. 나는 단 1초 동안 기쁘고, 다시 홀로 있으라. 마침내 당신은 내 지음(知音)이 되라.
2008년 2월 신동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