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무의 키스 [정진규]

초록여신 2008. 2. 8. 11:41

 

 

 

 

 

 

 

 

 

 

 

 

 

 뿌리가 길어 올려 가지 끝 우듬지까지 물길 내고 있다 하여도 뿌리는 제 입술을 줄창 땅속 깊이 묻고만 있고 가지의 입술이 오직 하늘 속살을 제맘대로 휘젓고 있다 나무의 사랑법을 나는 잘 모르겠다 뿌리는 사랑의 생산이고 가지 끝 우듬지는 사랑의 탕진인가 정처없다 어느 게 더 사랑의 혀를 제대로 내두르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게 진짜라고 또 우길 참인가 이 겨울날에도 맨몸으로 이파리 하나 없이 허공을 휘어잡고 있는 느티나무 잔가지들 그들의 사랑법을 따라가다가 나는 손이 시렸다 허공 휘어잡기 자꾸 놓쳤다 뿌리가 성치 않은 모양이었다 자꾸 공급이 끊겼다

 

 

 

 

 

* 껍질 / 세계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