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귀향 2 [이재무]

초록여신 2008. 2. 6. 21:19

 

 

 

 

 

 

 

 

 

 

 

마음으로만 챙기는 고향

어쩌다 큰맘 먹고 들리는 날엔

풀잎들 반갑고

유년이 멱 감고 있는 냇물

여린 손 뻗어

등짝의 땀 씻어주었다

밭두렁 따라

땀내음과 나란히 누워

잠자던 오래 전의 발자국들으

화들짝 놀라며 보릿잎들을 흔들었다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마을의 앞산 뒷산은

장정의 푸르 웃음

온몸으로 내밀며 추억의 가지

양 어깨에 척척 얹혀 왔지만

호박죽마냥 푸짐했던 동무들 웃음

물길 따라 하나 둘 풀려 나갔다

내가 버리고 네가 버린 마을

예나 지금이나 노년으로 남아

노인들의 근력으로만 버티고 있었고

갈수록 노인들 삭신 짓누르는

마을의 부채는 무거워 갔다

마음으로만 챙기는 고향

어쩌다 큰맘 먹고 들러는 날엔

철부지 때 꿈들이 뛰어나와 발목 걸고

그간의 얘기 한꺼번에 들려주며

훌쩍거렸다, 다시는 떠나지 말라

노여워하며

해마다 빚홍수에 시달리면서

흥건했던 풍년의 인심

흉년으로 각박해지는 마을

등허리 아프게 짊어지고 오던 날

그믐달은 겨우겨우

산골길 어둠 쓸고 있었다

 

 

 

 

 

* 섣달 그믐, 천년의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