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서울과 동해 사이 [김향]

초록여신 2008. 1. 24. 22:02

 

 

 

 

 

 

 

 

 

 

 

 

서울이 나에게 '너는 또 동해로 가고 있군'하고 말한다

동해가 나에게 '너는 지금 동해로 오고 있어'라고 한다

간다ㅡ온다 사이에서 나는 엉거주춤하다

말과 글자와 사람 사이에서 나는 늘 엉거주춤하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비가 오고 있고

아스팔트에 윤기가 흐르고

언덕을 올라가는 자동차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는 것

 

 

내 옆자리에는 낡은 배낭이 앉아 있다

헐렁한 지퍼를 조금 내린 채

오래전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다는 듯 편안하게

나는 그것 안으로 손을 슬몃 넣어 사과 하나를 꺼낸다

순순히 딸려 나오는 사과

나는 벌건 그것을 한입 베어 문다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내 이빨에 난 상처가 선명한 사과를 도로 넣고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무들이 비를 맞으며 내가 온 길로 달아나고 있다

 

 

버스는 동해 쪽으로 바짝 붙었다 조금 후면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물고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수레 발자국, 천년의시작.